FAQ – Sharing from Various Organizations (In Korean)

"삶은 인간만큼이나 말없는 생명체들에게도 소중한 것이다. 사람이 행복을 원하고 고통을 두려워하며, 죽음이 아닌 생명을 원하는 것처럼 그들 역시 그러하다." ~달라이 라마

자주 묻는 질문 – 카라(사)동물보호시민단체 Korea Animal Rights Advocates (KARA)
개식용 FAQ

자주 묻는 질문 – 동물과 함께 행복한 세상 By People Defending Animals (PDA)

1. 소, 돼지, 닭은 먹으면서 왜 개만 안 된다고 하죠?
현재 소, 돼지, 닭 등의 축산 동물은 공장식 방법으로 사육되고 있습니다. 공장식 축산업은 동물의 생태를 기업의 시스템에 맞추어 동물의 생태는 철저하게 무시되고 동물은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경험하며 살아있는 동안 온갖 질병에 시달리게되는데 이러한 동물 종의 수를 더 늘려서는 안 됩니다. 이런 공장식 축산의 시스템은 환경문제도 야기하는데 구제역, 조류독감, 광우병 등의 근본적 원인이며, 이를 전환하고 육식을 줄이는 것은 이미 시대적 흐름입니다.

2. 식용견과 애완견을 구분하면 된다?
개농장에서 개고깃감으로 키워지기 위해 그곳에서 태어나고 번식하는 개들뿐만 아니라, 집에서 키우던 개들과 집을 잃은 유기견도 개고기집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개농장에서 태어나 길러져도 누군가가 데려다 키우면 반려견입니다. 먹는 개와 키우는 개가 따로 있다는 주장은 일부 개를 먹는 사람들이 스스로 죄책감을 덜기 위한 심리적 방편일 뿐입니다.

3. 개식용을 합법화해서 인도적으로 도살하면 되지?
축산물에는 유해성 박테리아, 바이러스, 기생충 등 식품으로 섭취하기에 부적절한 유해 요소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체계화된 시스템에 따라 사육, 도축, 가공 등의 단계마다 철저한 위생관리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이런 위험에 비해 얻게 될 이득이 더 클 경우 식품으로 편입해 이용해왔고 유해 요소 차단을 위한 과학적 연구와 정책에 비용과 시간이 소요됩으로 한국 사회가 국민 먹거리에 대한 새로운 부담을 떠안게 되는 것이므로 이에 대한 단절을 더 중요한 과제로 검토해야 합니다.

4. 개인의 취향이니 간섭하지 마라?
음식문화는 시대에 따라 변합니다.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근절하자는 것입니다. 개를 반려동물로 키우는 가정이 늘고 있고, 동물에 대한 학대와 잔인함이 최근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학대가 만연한 개식용 부분이 특히 먼저 종식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5. 개식용이 우리의 전통문화라고요?
가치관은 변합니다. 악습이라면 사라져야 합니다. 먹을 것이 넘쳐나지 않았던 옛날, 보릿고개 넘기기 어려운 시절, 어쩔 수 없이 개를 많이 잡아먹었던 상황과는 달리, 먹을 것이 넘쳐나 비만, 당뇨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오늘날에 맹신적 보신습성이 이어진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입니다.

개는 수천년이 넘는 세월을 인간과 함께 살아왔습니다. 개는 인간에게 정서적 이로움은 물론이거니와 각종 사회분야에서 인간을 위한 서비스를 하고 있고, 다양한 역할로 인간 사회에 기여하며 인간과 교감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개는 ‘먹는 것’, ‘고깃감’이 아닌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모습으로 변해가고는 있는데, 한쪽에선 아직 개를 먹는 인구가 남아 있다니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개의 식용 사용이 인정되는 한, 반려동물의 보호와 생명존중이란 말은 그저 환상일뿐입니다.먹어도 되는 동물이라는 인식이 그만큼 그 보호가치를 희석시킬 수 밖에 없고 따라서 버리는일도, 학대하는 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됩니다.

사람의 곁에 사는 반려동물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사회 전반의 생명존중 의식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일입니다. 우선 가까이 있는 동물들과 이러한 긍적적인 관계를 맺으며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은, 무엇보다 우리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출처: 동물과 함께 행복한 세상 People Defending Animals http://cafe.daum.net/happyanimalcompanion

자주 묻는 질문 – 누렁이살리기 운동본부 By Anti Dog Meat Movement Headquarters


1. 소는 먹어도 되고 개는 먹으면 안되나?
소, 돼지, 닭은 애초부터 식용으로 기르기 시작했으며 개는 호신, 사냥, 애완용으로 기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동물 중에서 학명에 가족(familiaris)가 들어가는 것은 개뿐입니다. 기마민족은 그들의 사냥을 돕는 개를 가족처럼 사랑합니다.
그런 가족같은 동물을 먹는다니 엽기적인 변태이고 이것을 고집하는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개와 인간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과거에도 개를 식구로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어요. 인류의 보편적인 감정이니까요. 자신에게 헌신봉사하는 동물을 잡아먹는 행위가 아름다울 리 없어요.
특히나 아이들에게는 영원한 친구입니다. 당신도 어렸을 때 멍멍이 안 좋아했나요. 아이들이 입을 떼면서 하는 말은 맘마, 엄마, 멍멍입니다. 비슷한 단어죠. 당신은 뱀이나 고슴도치 좋아했습니까? 아니면 소, 돼지?

2. 서양인의 문화에 맞추지 말자구요?
우리가 어느 나라에 수출해서 그나마 이 정도 밥 먹고 살고 있지요? 물건 사주는 사람의 취향에 맞추고 아부하는 것이 장사 아니던가요? 국가 이미지가 무역에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대에 우리 고집만 피우고 살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그 문화가 보편타당성이 있는데도 말입니다. 절대 다수의 한국인들도 이 관습이 사라지길 바랍니다. 과거에도 우리 나라에서는 개를 먹기 위해 일부러 집단사육하지 않았어요. 일부 사람들이 쉬쉬 하며 개 잡던 풍습을 내놓고 문화로 인정하라니요. 좋은 문화는 다 어디에 두고요. 땅 속 미물이 죽을까봐 뜨거운 물도 함부로 버리지 않았던 사람들이 바로 한국인들입니다.

그리고 자꾸 서양을 운운하는데, 동양은 개를 다 먹고 서양은 개를 다 안 먹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나라, 중국 일부지역, 베트남 등을 제외한 다른 나라 사람들은 먹지 않으며, 모두 개 잡아먹는 관습을 아주 혐오스럽게 생각합니다. 서양인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사람들도 야만스럽게 생각하는 관습입니다. 동양인에 대한 서양인의 멸시로 이 문제를 비화시키는 것은 교묘한 말장난입니다. 바로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가 혐오스럽게 생각합니다.

3. 개고기가 민족음식이라니요?
빈궁한 옛날에는 먹을 것 많이 안 주어도 스스로 싸돌아다니면서 주어먹고 커주는 개를 잡아 먹고 영양보충을 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 시대에도 아무리 배고프지만 개를 잡아먹은 행위가 참으로 안타까웠을 겁니다. 달걀도 못 먹고 5일장에 내다 팔아야 하던 시대가 불과 30년전입니다. 그 빈곤의 시대에 어쩔 수 없이 먹었던 것을 세계인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먹을 이유가 없습니다. 특히 개고기 관습은 곤궁을 면하기 위한 것뿐 아니라 ‘오뉴월에 개 패듯’ 하는 말처럼 때려잡는 것까지를 포함하는 잔인한 관습입니다. 일종의 새디즘이죠. 우리 민족 특유의 음식으로 자랑하려면 우리 나라 산천에서만 나는 특산물로 만든 음식이라거나 고유의 비법으로 만든 음식이라야지요. 김치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2,30년 전에는 개장국집 찾기도 어려웠어요. 그걸 먹고 들어와서도 챙피해서 말도 못 꺼내고요. 개천가나 산기슭에서 쉬쉬 하며 잡던 것을 민족음식이라니요.

4. 중국인은 곰 발바닥, 프랑스인은 원숭이골을 먹는다고요?
무식한 소리입니다. 전 세계에서 국가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치고 동물보호법이 없는 나라가 없습니다. 그런 음식은 밀렵으로 음지에서 일어나는 변태적 행위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원숭이골 요리는 프랑스가 아니라 중국입니다. 왜 브리짓 바르도 때문에 프랑스가 미우세요. 바르도는 그리 열성적인 동물운동가도 아닙니다. 아예 홍신이 이야기를 앵무새처럼 외우세요. 골 요리는 이미 중국에서 불법화되었습니다. 곰 발바닥 요리도 국제적으로 문제가 되자 중국정부는 곰농장을 폐쇄했구요. 물론 주요 고객은 한국인들입니다.

5. 달팽이 요리를 먹는 나라도 있다고요?
정말 무식의 극치입니다. 우리 나라는 프랑스보다 더 오래 전에 달팽이를 약용으로 먹어 왔습니다. 관절염엔 특효라고 믿었죠. 그리고 그거야말로 민족음식입니다. 달팽이를 사람이 먹기 좋게 요리법을 개발해낸 것은 인류의 지혜지요. 달팽이가 사람을 믿고 자발적으로 충성합니까? 비교의 대상이 아닙니다. 달팽이가 개라면, 인간은 신입니다.

6. 소도 사람을 따르니까 소도 먹지 말아야 한다고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개도, 소도 먹지 말아야지요. 개고기는 사람의 심성을 지키면서 육류를 절제하는 최소한의 공통분모입니다. 실제로 개를 안 먹는 사람은 소까지 안 먹는 경우가 많지요. 개고기를 먹는 것이 소도둑이라면 소고기를 먹는 것은 바늘도둑입니다.
소와 개를 비교하는데, 소는 주인을 알아보고 말을 듣는다는 것이지 개처럼 주인을 위해 자발적으로 봉사하고 진정 이해, 사랑하는 동물은 아닙니다. 그래서 개는 가축이면서 또한 반려동물이지요. 어떤 사람이 뱀을 목에 칭칭 걸고 다닌다고 뱀이 인류의 반려동물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 사람은 뱀을 안 먹겠지만요.

7. 허준 선생의 동의보감에 개고기가 좋다고 나와 있다고요?
동의보감의 내용은 민방요법을 모아놓은 것이 99%이며 허준 선생의 본인 판단과 주석을 단 것은 극히 드뭅니다. 허준선생이 개고기가 한의학적으로 옳고 좋은 것이라고 말한 사실은 없습니다.
동의보감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이제부터 약국에 가지말고 산야에 덫과 올무를 놓아 야생동물을 다 잡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맹신적 보신문화가 한반도를 동물의 지옥으로 만들었어요. 그리고 개를 먹는 사람들은 몸들이 다 허약하거나 정력이 없는 사람들입니까. 맛으로 먹지 않습니까. 울부짖는 개들의 고통은 아랑곳 하지 않고 지금 맛으로, 반발심으로 먹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생각할지도 고려하세요. 우리도 그런데 개를 전혀 먹지 않는 다른 나라 사람들은 극도의 혐오감을 느낄 것입니다.

8. 중국 황실과 고대 성현들도 먹었다고요?
문화는 시대에 따라서 변합니다. 고대 성현들이 설령 먹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잘못됐다면 배척해야하지요. 주나라 때는 정치적인 정적을 제거하면 그 인육으로 젓을 담가서 신하들에게 먹게 하였는데 그러면 인육을 먹는 인종이 현대에 있다면 옛날 일을 사례로 삼아서 정당화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중국황실과 우리 민족문화와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그거야말로 완전한 사대주의이며 개 먹는 습관이 사대주의라는 문헌적 증명만 될 뿐입니다. 개 먹기 위해 고전을 너무 많이 연구하시는군요. 보다 인정 넘치는 우리 문화를 발굴하셔야죠.

9. 중국인, 동남아인들도 먹는다고요?
중국인의 95%를 차지하는 한족은 개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광동 지방의 일부 사람과 조선족만이 먹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방계 이주민들이 흘러들어간 태국 북부, 베트남 등지에서 일부 먹고 있고요. 태국, 대만은 이미 개고기를 법으로 금지했습니다.

10. 먹는 것 가지고 시비하지 말자고요?
그러면 우리가 교양을 왜 따집니까? 옆 사람 불쾌하지 않게 배려하는 것 아닌가요? 세계인의 99%, 한국인의 70%가 개고기를 먹어 본 경험이 없고 그것을 상당히 혐오스럽게 생각합니다. 누구는 여론조사에서 80%가 먹어 본 경험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 여론조사의 대상에는 어린이가 빠져 있습니다. 진짜 통계는 이것입니다. 인구의 큰 비율을 차지하는 어린이가 안 먹고,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들 대부분이 안 먹고, 성인 남자의 절반이 안 먹습니다. 더 이상의 통계조사는 개 먹기 위한 장난일 뿐입니다.

세 명의 입 때문에 나머지 7명이 극히 혐오스럽다면 이것은 정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 먹는 사람들도 함께 세계인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게 됩니다. 우리 아이들까지. 개고기 먹는 사람을 시비하지는 않습니다. 당신들이 오히려 지나치게 합리화하고 자기방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금연운동은 왜 합니까? 내가 피고 싶으면 피는 것이지… 이것은 흡연보다 더한 문제입니다. 죄 없는 개들은 개대로 죽고, 나머지 사람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고 있으니 말이죠. 개 먹는 사람들이 이 고통을 알겠습니까? 아무려면 죽이자는 쪽보다는 살리자는 쪽이 바람직하겠죠. 속히 개고기를 끊으세요. 당신에 대한 평가가 달라집니다.

11. 애완견만 안 먹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요?
개고기로 유통되는 가운데에는 개도둑이 훔쳐간 장물도 있습니다. 또, 근본적으로 똥개든 식용견이든 그들은 주인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당신만 차별할 뿐입니다.

12. 소위 개고기용 개들이 무엇을 먹고 크는지 아십니까?
사료값을 아끼지 위한 최저가 사료에 닭대가리를 수거해다 삶아서 먹이고, 음식 잔반을 걷어먹입니다. 그런 저질 음식을 먹은 개들의 세포 구성분이 인체에 들어가면 좋을 리 있겠습니까? 광우병 파동도 소가 먹은 사료의 성분 때문에 생긴 일이었습니다.

13. 개고기 도축과정을 합법화해서 위생을 도모하자구요?
이는 마치 사창가를 합법화해서 에이즈를 막자는 발상과 같습니다. 도덕적으로 부당하고, 보편타당성이 부족하면 안 하면 될 일이지, 그깟 혀의 만족을 위하여 세계인의 손가락질을 받는 야만악습을 아주 공고히 하자는 것입니까? 어린 자녀들의 글로벌 사회생활을 생각해서도 안될 일입니다. 안 먹는 다수와 죄 없이 죽는 개들은 어떻게 하시고요? 이게 단지 고기 관리의 문제입니까?

마지막으로 개고기를 먹지 말자는 것에는 이런 장황한 이유들이 사실은 필요없습니다. 인간답지 않은 짓이기 때문에 안된다는 한 마디로 요약됩니다. 다만 먹는 사람들이 여러 가지 핑계를 대니까 조목 조목 반박한 것입니다. 이런 설명에도 납득이 안간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마약이나 담배나 술이나 거기에 찌들면 끊기 어려운 것이지요. 다만 먹는 사람들은 조용히 먹으세요. 어린이들까지 개고기는 당연히 먹어도 되는 우리의 식문화인가보다 하는 생각을 갖지 않도록요. 부디 개다리 뜯는 아이들보다는 동물을 사랑하는 아이들로 키우세요.

출처: 누렁이살리기 운동본부 Anti Dog Meat Movement Headquarters http://www.admh.org/

개고기 옹호자 분들께 드리는 글
Written by 정고미라

개고기를 반대하는 이유는 개가 소, 돼지보다 더 본질적으로 우월하거나 가치 있는 동물이라서가 아닙니다. 인간에게 정서적으로 더 가깝고 친한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전쟁터에서 이름도 모르는 적군을 죽이는 것과, 길 가던 사람을 납치해서 성폭행하고 죽이는 것과, 자신의 부모를 죽이는 것은 분명히 다르고 처벌받을 때의 형량도 다릅니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죽어간 이름 없는 적군과 내 부모는 똑같은 인간입니다.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평등한데 왜 처벌을 다르게 합니까. 사회적 맥락에 의해 죽음의 의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맥락을 무시하는 것은 실재하는 고통을 외면하는 일입니다. 뉴스를 통해 어떤 아이가 납치되었음을 알아도 그날 밤에 잠을 잡니다. 하지만 내 아이가 납치되면 잠을 잘 수 없습니다. 똑같은 아이이지만 경험되는 고통은 분명히 다릅니다. 내 아이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자기 아이가 유괴되어 괴로워하는 사람의 고통을 함부로 폄하할 수는 없는 것이죠.

개에 대한 경험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개를 많이 사랑하고 애정을 갖는 사람들이 문제라고 비판해야 할까요? 오랫동안 집에서 키우던 개가 죽었을 때 함께 살았던 가족들은 상(喪)을 당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정서적인 친밀함의 정도가 슬픔의 정도를 결정합니다. 친밀함을 많이 느꼈다고 비판해야 할까요. 개는 홀로 사는 노인에게 혹은 자폐증 어린이에게 치료효과가 있음이 밝혀졌고 눈먼 사람에게 안내견이 되기도 합니다. 반갑게 꼬리를 흔들며 조건 없이 애정을 주는 동물은 흔치 않습니다. 주인에게 충실하게 의리를 지키는 동물도 흔치 않습니다. 물론 모든 개가 다 그런 것도 아니고 다른 동물들에게도 그런 특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개라는 동물이 구별되는 점은 인정되어야 합니다.

인간에게 친밀함의 가치는 의리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나타납니다. 가부장적인 우리 전통문화에서도 함께 고생했던 조강지처는 버리면 안 된다는 감수성이 있습니다. 또, 나에게 은혜를 베푼 존재들에게는 적어도 내 욕심이나 필요에 따라 배반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윤리의식이 있습니다. 의리를 저버리는 행위는 정신건강에 큰 피해를 미칩니다. 무의식중에 스스로를 혐오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개고기를 먹는 일이 모두에게는 아니라할지라도 상당수의 국민들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혐오감의 원인에 대해 잘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개고기가 혐오스러운 것은 지렁이처럼 징그러워서가 아니라 가치규범이 무참히 짓밟히기 때문입니다. 사람고기가 혐오스러운 것과 매우 유사한 심리입니다. 매우 친밀한 사람을 살해한 사람에 대한 느낌과 유사합니다. 정신적인 가치가 분열되기 때문에 혐오스러운 것입니다. 개고기에 대해 혐오감을 느낀다고 비판해야 할까요. 소고기나 돼지고기에 대해서는 혐오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비판해야 할까요.

오랫동안 당연시되었던 가부장적인 관습들이 지금은 더 이상 당연하지 않듯이, 동물을 죽여서 먹는 육식문화도 사실 당연한 것은 아닙니다. 광우병과 조류독감 등은 공장식 축산업의 필연적인 반작용이었고 자연의 역습입니다. 살생의 불가피함을 당연시하는 것보다는 살생을 줄이려는 노력이 중요한 때입니다. 남에게 피해를 전혀 끼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가능하면 남에게 피해를 덜 끼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중요하겠지요. 어차피 폐 안 끼치고 사는 게 불가능하니까 아무렇게나 살자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역사상 전쟁과 살인이 없었던 시대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평화에 대한 노력을 포기할 수는 없는 거지요.

살생이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에게도 바람직하지 않은 이유는 그 인과가 자신에게 되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양심이 깨어있는 사람은 자기가 저지르는 잘못의 결과가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 전에 잘못을 만회하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양심이 잠들어있는 사람은 무의식 상태에서 인과를 돌려받습니다. 그래서 원인이 자기에게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해 억울하게 당하게 되고 피해의식으로 다시 보복하게 되고, 그래서 인과의 악순환이 이어집니다. 전생이 없다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자기가 태어난 순간도 기억 못하고 돌잔치 하던 순간도 기억 못하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기억 못하는 것은 다 없다고 생각하면 위험해집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남에게 폐를 끼칠 때가 많음을 상기하면 할수록 내가 받는 고통에 대한 이해도 증대됩니다.

살생을 피할 수 없더라도 살생을 줄여야 합니다. 특히 친밀한 대상에 대한 살생일수록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 인과는 더 크게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생명이 개의 생명보다 본질적으로 우월하다고 할 수 없듯이, 개가 돼지보다 본질적으로 우월하지도 않고, 돼지의 생명이 양배추의 생명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생명들의 동일함에 입각한 형평성의 논리는 자기기만이 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경험에 대한 부인하기이기 때문입니다. 양배추가 땅에서 뿌리가 뽑히는 걸 보는 마음과, 돼지의 목을 따는 광경을 보는 마음은 같을 수 없습니다. 날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지만, 내 가족이 죽을 때의 마음은 너무나 다릅니다. 똑같은 사람이고 생명인데 왜 차별적으로 슬퍼하느냐하고 비판해야 할까요.

개는 이미 다수의 인간들과 아주 특별한 사랑을 주고받았습니다. 개라는 동물에게 아무런 애정이 없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의 경험은 존중되어야 합니다. 개고기에 대한 옹호는 개에 대한 문제이기에 앞서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경험에 대한 학대입니다. 대한민국을 사랑하지 않는 국민이라 할지라도 외국에서 한국인들이 무시당하는 것을 보면 괴롭습니다. 그들이 남이 아니라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개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는 남이 아닙니다. 외국 사람들이 개고기에 대해 비판을 할 때 우리가 자존심 상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너무나 당연하고 소중한 전통문화를 부정당해서 괴로운 것인지 잘 따져보아야 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우리가 비판을 할 때 일본인 중에는 자존심 상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왜 자존심이 상하는지 잘 이해해보아야 합니다.

프랑스 여배우가 한국을 야만스럽다고 비난했을 때 그 세련되지 못한 방식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한국에서는 반작용만 커졌고 오늘날 개고기를 도리어 합법화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비난은 대상을 도리어 강화시킨다는 법칙이 다시 한 번 증명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법칙일 뿐이지, 무의식적으로 살아가지 않고 깨어있을 수 있다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저는 개고기를 옹호하는 사람들을 비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파합니다. 저의 고통은 물론 균일하지 않습니다. 이라크나 티벳에서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과, 내 주변사람이 죽어갈 때 나의 고통은 같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개가 밥상 위에 올라오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도 충분히 인정합니다. 우리가 어떤 대상에게 더 공감을 하는지의 문제는 어쩔 수 없는 문제이고 누가 누구를 사랑하고 안하고의 문제처럼 정말 어쩔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 서로서로 배려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 배려의 대가가 나에게 너무 큰 희생이 아니라면 배려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습니다.

개고기 합법화를 옹호하시는 분들께 부탁드립니다. 조금만 양보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대부분의 동물들이 인간으로부터 피해를 받고 이용당하는 것을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인간 종에 포함된 이상 직간접적으로 이미 가담하지 않은 사람은 없으니까요. 우리는 어차피 수많은 동물실험의 공범자이고 가죽 벗기기의 가담자입니다. 이미 수많은 동물들의 살을 먹어왔습니다. 이미 우리의 몸은 동물들의 무덤이고 우리의 일상생활은 그들의 희생을 딛고서 가능한 그 무엇입니다. 하지만 살생을 줄여나가기 위한 노력을 거꾸로 돌리지는 말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개고기 합법화는 육식을 줄여나가야 하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할 뿐만 아니라 민족적 자존심과 오기를 혼동하는 것으로 비춰질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살생은 무의식을 무겁게 합니다. 표면의식에서는 느끼지 못할지라도 본성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고기를 드시는 분들께 부탁드립니다. 몸보신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매우 많습니다. 형평성의 논리를 근거로 개고기를 옹호하시는 분들께 부탁드립니다. 그 논리는 우리 스스로를 부인하는 논리입니다. 나에게 아무 상관없는 죽음이라도 유가족들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경험이듯이, 생명을 살리는 문제에 있어서 감정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감정에 빠져서도 안 되겠지만 분명히 감정은 고려되어야 합니다. 맥락은 존중받아야 합니다. 서로 상반되는 맥락이 공존할 때 가능하다면 고통이 적은 방향에서 합의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개고기를 먹지 못하는 고통을 견뎌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 대상이 언제라도 고기로 둔갑될 수 있다는 불안감 없이 살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개 식용 반대하시는분의 주장.
출처:Mun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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